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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 2


처형님 댁과 식사를 하면서도 머릿속에선 차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이놈의 차, 확 폐차시켜버리고 새것으로다가 하나 뽑아?'

아내는 대책 없이 성질만 급한 내 눈앞에 현실을 펼쳐놓는다. "그럼 우리 내년에 이사 어떻게 가?"

아아, 대한민국, 몹쓸 대한민국. 없는 사람은 더 허전해지고 땅을 가진 자가 세상을 다 갖는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뭐 땅이 절대반지라도 된다는 말인가. 새로 지어 따끈따끈한 33평 주공아파트에 신혼의 보금자리를 꾸밀 때만 해도 나름 부담없는 전세값에 좋아했건만, 2년 후 계약 갱신할 때 1,500만 원을 올려주고, 내년엔 그나마도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해서 집을 비워야할 형편이다. 그런데 전세값이 아주 우리별 1호를 타고 대기권 밖으로 뛰쳐올라갈 조짐이다. 새로운 집을 찾아 들어가려면 적어도 2,000만 원은 확보해야할 터. 이사 비용은 깔끔히 무시해 주고 순전히 전세값만 산수로 따져도 그렇다. 통일의 관문 파주, 이젠 아주 땅투기의 관문 파주가 되어버렸다.

아내는 꼬박꼬박 가계부 써가며, 흔한 주전부리 하날 사도 반성문 깜지 만들듯 빽빽하게 적어내려갔는데, 나 역시 당구도 못 쳐, 게임도 안 해, 회식 빼곤 술자리에 참석도 안 해가며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키고 도 닦듯 살아왔는데, 전세값 대다가 청춘이 다 흘러가게 생겼다. 아내는 찬이를 낳기 불과 얼마 전까지 일을 해가며 맞벌이로 살림을 도왔고, 찬이를 낳은 후에도 일을 했다. 물론 '직접 육아를 맡는 게 돈 버는 일'이라는 나의 반대에 현재는 쉬고 있지만, 일을 할 때나 쉬고 있을 때나 한결같이 똑순이로 절약하며 살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바람직한 30대 대표 부부로 충분히 꼽힐만 하거늘, 어째 대한민국은 서민이 발 맞춰나가기가 너무 버겁다. 1% 황새는 살기 좋은 세상이나, 대부분의 뱁새인 나 같은 이들은 전세값 감당하기도 벅차다. 이런 와중에 차라니? 아내 눈빛이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나야 회사에서 차를 주고 보험료 내줘, 수리비 내줘, 기름값까지 일부 지원해 주니 만사형통 속 편하지만, 당장 집에 발이 묶인 아내가 안쓰럽다. 아내도 10년 이상 현장에서 일해온지라 찬이가 조금 크자 슬슬 복귀하고픈 눈치인데, 찬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하기는 너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슨 도보생활권도 아니고. 

며칠 후 단골 카센터에 방문했다. 냉각수 누수 뿐만 아니라 엔진도 들어내야할 수준이다. 십몇만 원 정도 들여서 수리한 후 더 운행할 수 있다면 적당한 선에서 수리해서 끌고 다니겠는데, 수리 견적을 내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정비 직원, 친철히 말해준다.

"단골이시니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 차 수리하면, 서로 불편해집니다. 얼마 후 또 퍼질테고, 그럼 선생님께서는 '뭘 수리했기에 이 모양이냐!'고 하실 게 분명합니다. 물론 누수가 좀 있다고 해도 수시로 냉각수 보충해주면 얼마간 더 탈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보내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어요."

쉽게 말해, 수술해서 악성 종양을 제거하려고 배를 열었는데, 손 쓰기엔 너무 늦어 다시 덮어버렸다는 소리다. 보내줄 때가 되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차 수리가 한참 걸릴 듯해 아내더러 쇼핑몰에서 아이 쇼핑이나 하고 오라고 보냈는데, 15분도 안 돼 전화했다. 일 끝났으니 얼른 오라고. 영문 모르는 아내, 자동차 수리가 아니라 번갯불에 3초 삼겹살 굽냐고 불만이다. 버럭, 서방님이 오라면 얼른 오시라니까요!

...............

"여보, 이제는 마음에서 놓아 줍시다. 이젠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어요."

저녁 먹으면서 아내에게 찬찬히 얘기했다.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데,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요?"

"개복했다가 상태가 심각해서 손을 못 대고 다시 덮었으니까...... 그냥 인연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합시다."

모르는 이 들었다면 오해했을 터. 아내 차의 주행거리 19만 km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연식이 94년이니 자연사에 가까워질 나이이긴 하다.

몇 군데 자동차 판매 대리점도 내방하고, 중고차 사이트도 들락거렸지만, 아직 차를 구입해야할지 말지 결론을 못 내렸다. '돈을 모으기 위해선 절대 차를 사면 안 된다!'는 게 나의 신조였고, 2,000cc 이상의 자동차를 구입하려면 연봉이 6천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게 평소 나의 지론이었다. 당연히 지금 필요한 차는 그보다 작은 1,500~1,600cc 사이의 차량이지만, 아내의 손이 심히 떨리고 있다. 아내는 신중함을 넘어 돌다리의 표본을 채취해 밀도 검사를 한 후 시공사 및 감리업체까지 조사하고 지역 주민의 다리 사용에 따른 애로사항까지 모니터링하는 지경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차를 사, 말아 혼자 고민하고 있다. 아내나 나나 면허 취득 후 계속 스틱 차량(수동 차량)을 몰았기에 오토 차량에 비해 저렴한 스틱 차량을 알아보고 있으나, 차 값이 어디 만만한 것이던가. 괜히 큰소리 한번 쳐본다.

"지금 내가 운전하는 회사 차량의 주행거리가 18만 5천km인데, 어차피 4년 정도만 더 탈 생각이야. 그럼 이번에 사는 차는 당신이 사용하다가 4년 후엔 내가 몰고, 당신에겐 4년 후에 더 멋지고 좋은 차로다가 한 대 뽑아줄게. 오빠만 믿어!!"

아내, 나를 보며 그저 웃는다. 5살 어린 남편이 '오빠만 믿어!'라고 말할 땐, 단단한 땅이 아닌 구름을 딛고서 젊은 혈기를 앞세우는 때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냥, 차 사지 말자."

아내 다시 웃으며 말한다.

.......................

난 욕심이 많다. 아내 앞에서 '어린 남편'이 아니라 당당한 남편, 차 한 대쯤은 '얼마면 돼?'라 말하며 현금 일시불로다가 팍팍 질러주고 싶다. 아내가 철없고 성질까지 나쁜 어린 남자를 만나서 찬이 키우며 고생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맘 같아선 새차에 리본 포장해서 깜짝 선물을 해 주고픈 마음도 충분히 있다. 나름의 꿈도 있고, 목표도 있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런데 아내가 저리 망설이는 것을 보니, 내가 왜 조금 더 부유하지 못한가 자책이 된다. 30대가 되고 아빠가 되어서 눈에 '돈돈돈' 불을 켜고 있지만, 월급쟁이의 생활에 도깨비 방망이가 툭, 하고 떨어지지 않는한 뾰족한 수가 생길리 없다. 그런데 내가 너무 티를 냈나 보다. 저녁에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아내가 조심스레 묻는다.

"당신, 나 차 못사줘서 자존심 상했어?"

"......"

말 없이 소주만 털어넣는다.

"그럼 우리 차 사자. 조금 더 절약하면 되지. 돈 있고 없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 자존심 상한 모습 보기가 그렇네."

"......"

여전히, 차를 살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내의 말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나이 서른 하나에 과장이고, 대기업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출판계에선 대우가 가장 좋은 축에 속하는 문학동네에 근무하면서, 돌아보면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미안하다 했더니,

"당신한테는 나하고 찬이가 있잖아. 그리고 난 당신이 더 큰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믿어. 그러니까 당신한테 시집왔지."

그런다.

아아, 평생 신발이 헤질 때까지 걷고 달려도, 아내 옆에 꼭 붙어있어야겠다. 엔진에, 심장에, 시동을 걸어야겠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달려야겠다. 짠돌이 찬이 아빠, 화이팅이다!!  


2009/06/10 10:11 2009/06/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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