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틈새 시장을 노린다
틈새시장은 무엇인가?
틈새시장이란 마케팅원론 시험 답안용 말로 니치마켓이라고도 부른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틈만 나면 뭔짓(?)을 한다는 말도 있다.기회를 포착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한다는 뜻이다.
최근에 블루오션이라는 책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었는데 이 책도 결국은 틈새시장에 대한 이야기다
대충 이정도면 틈새시장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틈새시장은 존재하는 것일까?
패션은 빠르게 변화한다.
왜냐하면 패션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패션은 자연환경,정치 체제,사회제도,경제상태,종교관념,예술양식,가치 관념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한다. 즉 환경 보존에 대한 관심,남북통일에 대한 기대감,금융실명제 실시,IMF로 인한 경기침체,소비자의 취향 변화,새로운 브랜드의 출현,새로운 유통의 출현,일본 문화유입,유명 연예인의 패션등 크고 작은 요소들이 패션환경을 구성하며 영향을 주고 있다.
한달전의 패션환경과 오늘의 패션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고 앞으로 한달후의 패션환경은 오늘의 패션환경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달전에 소비자들을 100% 만족시켰던 패션으로 한달후에 똑같은 소비자를 100%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90%만 만족시켰다면 10%의 소비자는 새로운 패션으로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불만족하는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패션이 바로 틈새시장이다.
따라서 틈새시장은 항상 존재하게 되어있다.
틈새시장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막연하게 틈새시장을 찾을려고 하면 무척 어려운 일같이 보이지만 패션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열심히 조사하고 분석해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다.
가령 경기가 좋았을때는 중고가의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다가 IMF로 경기가 않좋아지자 소비자의 소비심리가 합리적으로 바뀌게 되어 좋은 품질에 저렴한 가격대의 제품을 판매하는 동대문등의 중저가 쇼핑몰 제품이나 지오다노와 같은 중저가 브랜드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리고 IMF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구매력을 보여주었던 10대 20대초반 타겟의 패션 브랜드들이 타겟의 구매력 감소로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되었고 IMF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구매력 감소가 적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를 타겟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던 것이 환경변화로 생긴 틈새시장들이다.
따라서 과거,현재의 패션환경을 조사 분석하여 흐름을 알게 되면 미래의 패션환경 예측이 가능하게 되고 틈새시장도 찾을수 있는 것이다.
1997년 1월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조그만 옷가게를 동업자와 시작할때였다. 매장 이름은 무엇으로 할지,어떤 제품으로 장사를 해야 할지 등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다.
그때는 IMF이전이라 사람들의 패션에 대한 소비가 왕성할때였기 때문에 없는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들이 팔리고 있었다. 이대나 돈암동,명동,압구정등 신세대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와 백화점들을 시장조사해 보고 내린 결론은 중고옷(일명 구제)이 틈새시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당시 압구정동에는 오일이라는 유명한 중고옷가게가 있었는데 그 집에는 사장이 직접 수입한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이 있어서 장사가 무척 잘되고 있었다. 보통 중고 제품을 취급하는 매장들은 중고 리바이스 청바지와 몇몇 소품정도만을 일반 보세제품과 편집해서 취급하고 있었지만 오일은 다양한 수입중고 제품만을 취급하고 있었다.
당연히 구제 매니아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고 연예인들만 많이 애용하는 매장으로도 유명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고였지만 오히려 왠만한 브랜드 제품보다도 가격이 비쌓다. 그 당시에는 특이한 제품이었고 중고이기 때문에 디자인이 하나일수 밖에 없는 희소성으로 비싸도 잘 팔렸다.
그 당시의 유행 경향을 분석해보면 압구정에서 유행하면 1~2년내에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구제가 곧 대중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제전문 매장으로서 다양한 아이템과 일반 대중이 사기에 무리가 없는 가격이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동업자가 구제 제품을 워낙 좋아하는 매니아였기 때문에 국내에 구제를 수입공급하는 사람를 알고 있었다.
아이템을 결정하고 나서 매장이름을 짓기위해 매일밤 고민하다가 키치(KITCHI:사전적 으로 비주류라는 의미가 있다)라는 이름을 지었다. 제품의 성격을 나타낼수 있고 일반 보세 매장과 차별화될수 있는 이름이었다. 매장 인테리어도 키치스럽게 폐타이어와 공사장에서 사용하고 버린 철봉,음료수 캔등을 사용했다.
나중에 우리매장을 본딴 매장들이 많이 생길정도로 특이했다.휘가로등의 잡지에도 특이한 옷가게로 계속 소개되었다. 이렇게 제품,인테리어,이름등이 특이했기 때문에 오픈하자 마자 인기를 얻을수 있었다.
그 당시는 구제 제품이 틈새 시장었던 것이다.
내가 찾은 틈새시장-사례2
1998년 1월
홍대에서 키치라는 구제 옷가게를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도매상인과 알게 되어 동대문 거평프레야 지하1층에서 동업으로 꼴통(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도매상인들이 쉽게 기억했다)이라는 상호로 구제 도매를 계속 했는데 그당시 다니던 회사(보성계열 마케팅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동업으로 하던 매장을 쪼개어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매장이름도 Y짱(YOUNG GENERATION의 캡이라는 의미)으로 바꾸고 대학로에 신세대기획이라는 조그만 사무실도 얻었다.IMF로 인하여 의류 경기가 않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을 준비하지 않을수 없었다.
경기가 않좋을수록 의류보다는 액세서리가 더 적합다고 생각했다.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부담없이 쉽게 구매할수 있고 일반적으로 마진도 더 좋고 재고도 별로 남지 않는다.
그당시 즉석스티커 사진기가 막 도입되어 인기를 끌기시작할 무렵이었다.그런데 스티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스티커 사진을 수첩등에 붙여 모아서 서로 돌려보기도 하고 연예인 같이 잘나온 사진은 잘 보이는곳에 붙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중에서 팔고 있은 그 많은 액세서리중에는 스티커 사진 전용 액세서리가 없었다.나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뺏지나 가방에 부착할 수 있는 액세서리등을 만들어서 스티커 사진을 붙이게 하면 인기를 얻을수있다고 생각했다.
즉석사진기 스티커용 악세사리가 틈새 시장이었던 것이다.
제품은 반응이 좋아서 남대문 액세서리상가에도 대량으로 납품하기도 하였으나 유통의 한계로 인하여 얼마되지 않아 손을 뗏다.
나는 그때 유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유통이 약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고 생산자입장보다는 판매자입장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후로 틈새시장을 고려할때 제품만 생각하지 않고 판매를 해야할 장소인 유통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내가 찾은 틈새시장-사례3
1998년 9월
IMF가 절정을 이루어 패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때마침 밀리오레가 오픈한다는 예기를 들었다.모두들 이런 경기상황에 밀리오레에서 오픈하면 바로 망한다고 하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워낙 좋은 조건으로 입점할수 있었기 때문에 망할것 각오하고 매장을 오픈하였다.
매장 이름은 집에서 부른던 이름인 문군을 붙여서 문군의 가게라는 의미로 문군네로 지었다.좀 촌스럽게도 느껴지는 이름이었지만 오히려 그당시 유행하던 일본식 이름과 차별화되어 사람들이 쉽게 기억했다.
아이템은 니트류로 시작하였다.그 당시만해도 니트류를 취급하는 매장은 적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품질,디자인,칼라등이 별로 좋지 않아서 인기가 없었다.구제 스웨터는 품질,디자인,칼라등이 좋았지만 디자인당 1PCS밖에 없어서 파는데 한계가 있었다.그래서 나는 구제 스웨터와 구제
스타일을 모방한 스웨터를 사입해서 판매하였다.
처음에는 워낙 손님이 없어서 장사가 잘 않되었는데 밀리오레가 홍보가 되면서 사람들이 바그바글 거리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잘 팔린다는 예기를 듣고 다른 매장에서 비슷한 제품들을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급기야 주변 모든 매장들이 내 매장과 비슷한 제품들을 취급해 나의매장 주변이 구제골목으로 불릴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아이템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문군네를 처음으로 유명하게 만든 발토시라는 아이템이였다.
일본에서는 미니스커트에 발토시를 연결해서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보통 일본에서 유행을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아이템은 우리나라에 도입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브랜드에서 비슷한 아이템을 카피해서 출시했다가 반응이 없어서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다리에 자신없는 여성들에게는 체형을 커버해주고 스커트를 입을수있게 해주는 정말 좋은 아이템인데 왜 반응이 없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얼마후 그 브랜드에서 반응이 없었던 이유를 알아냈다.일본에서 유행한 아이템은 스커트와 발토시를 끈으로 연결하였기 때문에 술집여자 분위기가 연상되어 어떻게 보면 너무 야하게 느껴지는 디자인 이었다.
일본은 성개방이 많이 되어 있고 심지어 고등학생들이 초미니 스커트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을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나는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재창조를 하면 성공할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커트와 별도로 입을수있게 디자인을 변형하였다.종아리에 묶거나 고무줄을 넣어 흘러내리지 않게 하면 스커트에 연결할 필요도 없고 래깅스나 청바지 위에도 입을수 있었다. 그 당시 막 뜨고 있었던 핑클이 입어서 인기를 더 확산 시켜 주었고 왠만한 잡지에는 문군네 발토시가 도배를 하다시피 하였다.
당연히 장사가 잘되었고 양말 브랜드에서 카피가 나올 정도였다. 발토시라는 아이템이 생소했기 때문에 일부러 신세대들이 많이 보는 패션잡지에 협찬을 적극적으로 해 주었다.보통 잡지에 많이 나오는 아이템이 유행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유행을 만든 셈이다.
